지옥의 문턱, 가나 아크라의 아그보그블로시
"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세계 최대 전자폐기물 더미", "컴퓨터들의 무덤" - 이런 무시무시한 별명들은 모두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 위치한 아그보그블로시(Agbogbloshie) 전자폐기물 처리장을 가리킵니다. 이 지역은 코를레 라군(Korle Lagoon)의 오다우 강(Odaw River) 근처에 있는 상업 지구로, 아크라 도심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난 2월, 환경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이곳을 방문했을 때 목격한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한때 아름다운 초록빛 해변 마을이었던 이곳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큰 전자폐기물 처리장으로 악명 높습니다. 매일 끊임없이 무언가를 깨뜨리는 소리가 들리고, 마을 위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주민들이 전선에서 구리를 추출하기 위해 매일 전자제품을 불태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지역은 세계 10대 오염물질 유해지역으로 선정되었으며, 토양의 중금속 오염은 허용치보다 45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브라운관 컴퓨터 모니터 하나에 들어있는 납 성분만 3킬로그램에 달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지역의 환경 오염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자폐기물의 글로벌 흐름: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전 세계적으로 매년 약 6,200만 톤의 전자폐기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는 40톤 트럭 455만 대를 가득 채워 적도를 한 바퀴 둘러쌀 수 있는 엄청난 양입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 중 22.3%만이 제대로 수거 및 재활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나머지 77.7%는 어디로 갈까요?
대부분의 전자폐기물은 각 국가의 엄격한 환경규제와 높은 처리비용 때문에 중국, 인도,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됩니다. 특히 미국과 유럽 연합 같은 선진국에서 발생한 전자폐기물이 '중고품' 또는 '구호품'이라는 명목으로 개발도상국으로 보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자폐기물의 불법 수출은 1989년에 체결된 바젤협약(Basel Convention)을 위반하는 행위입니다. 바젤협약은 유해폐기물의 국가 간 수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기 위한 국제 협약으로, 폐기물의 범위를 정하고 유해 폐기물 수출 시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전자폐기물의 건강 및 환경 영향
아그보그블로시와 같은 전자폐기물 처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은 심각한 건강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작업장에서는 9살 어린이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이들은 가족을 돕기 위해 맨손으로 폐전자제품 더미를 뒤져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찾고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 지역 주민들의 혈액과 소변에서 납과 카드뮴 같은 중금속 수치가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약 3,000명의 주민이 중금속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유해 물질은 뇌와 조정 시스템을 손상시킬 수 있으며, 유산, 불임 등의 생식 기능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어린이의 폐기능과 신경 인지 문제를 일으킬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환경적으로도 전자폐기물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전자폐기물에서 방출되는 납, 크롬, 망간 등의 유독성 화학물질은 인근 지역의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수로로 누출되어 물고기와 해산물에 축적됩니다. 또한 대기 중에 노출되면 온실 효과를 증가시키고 식량이나 공기를 오염시킬 수 있습니다.
전자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
전자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자폐기물로 인한 보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순환경제 전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재료 폐기·복구·재사용을 위한 철저한 환경보건 관행 구축, 전자폐기물 감소를 위한 지속가능한 소비 증진, 내구성이 향상된 전자제품 생산 등을 통해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각국 정부도 다양한 정책을 통해 전자폐기물 문제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환경 규제를 법제화하거나 납과 수은 등의 매립을 금지하고 있으며, 영국은 텔레비전 등의 가정용품을 유해폐기물로 분류하고 대상 물질 생산자는 국가에 등록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노르웨이 등 유럽 국가들은 전기·전자기기 폐기물 지령(WEEE 지령) 및 EU RoHS(전기 전자제품 내 특정 유해물질 제한지침) 등에 의거해 강력한 화학물질 규제 대응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1994년 바젤협약에 가입했으며, 1993년부터 폐기물 부담금 제도를, 2003년부터는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를 시행 중입니다. 특히 환경부는 2026년부터 전기·전자제품의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모든 품목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전자폐기물 문제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우리가 버린 전자제품이 아그보그블로시와 같은 곳에서 환경과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전자제품을 최대한 오래 사용하고, 수리 가능한 제품을 선택하며,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전자제품은 적절한 재활용 경로를 통해 처리하는 것입니다. 또한 전자폐기물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소비 습관을 기르는 것도 중요합니다.
기업들은 제품 설계 단계부터 재활용과 수명 연장을 고려해야 하며, 정부는 전자폐기물 관리를 위한 강력한 법적 체계를 마련하고 시행해야 합니다. 전자폐기물 문제는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우리의 작은 노력이 모여 아그보그블로시와 같은 곳의 환경과 사람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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